감사의 글
정역성지 문화재 신청은 한사람의 단독적인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위 신청은 정역성지가 세워진 종합적 역사이기도 합니다. 위 과정에 참여하신 분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도록 정리하여 감사의 글로 남기고자 합니다.
인사(1893년)-김일부
일부 김항선생은 1893(癸巳)년 2월 동학혁명을 피해, 다오개에서 국사봉 아래로 제자들과 함께 입산하셨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우연일지 모르나, 하늘의 일은 위와 같이 역사와 함께(時乘) 흘러갑니다. 위 국사봉 아래 입산 장소가 현재의 정역성지로, 하도용마바위와 낙서거북바위 중간 즉 황극수 옆입니다. 일부선생은 이곳에서 용 위의 닭(계룡)이 되어, 새로운 미래가 도래하고 있음을 세상에 알리셨습니다. 이곳이 인사를 펼치신 일부한음지입니다.
지리(1954년경)-이정호
민병천님의 전언에 의하면, 학산 이정호선생은 거북바위, 용마바위와 범바위가 조망되는 지금의 주작류(柳)바위에 앉아서, 위 바위들을 한 번에 찾았다고 합니다. 동양학의 뿌리인 하도낙서의 神物로 지리를 밝혀, 당대 최고의 학인들이 전국에서 모였습니다.
참고로 주작류(柳)바위와 범바위인 백호자(紫)바위가 남북으로 마주보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당시는 한국전쟁이후 민둥산이었으므로 가능했지, 지금은 울창한 나무로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위 범바위는 글과 구전으로만 전해 왔지, 실제 보았던 사람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천문(2008년)-예언(송철화, 조재련)
김용국, 민병천, 이광욱, 김정호, 공경옥, 박종환, 임종효, 손영덕, 권순범
하도용마바위와 낙서거북바위가 있으면 되지, 또 무엇 때문에 호랑바위가 있어야 하는가? 위 말은 신청자에게 일종의 화두였습니다. 그러다가 혹시 새 바위가 있다면, 청룡, 현무, 백호, 주작이 모두 있지 않겠는가 라는 엉뚱한 생각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김용국님과 의논하여, 새의 부리인 지금의 주작류(柳)바위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의문은 증폭되었습니다. 새의 부리는 틀림없었으나 위 바위들보다 훨씬 거대해서 균형이 맞지 않았던 것입니다. 상상에 상상을 거듭하여 혹시 위 새 부리와 균형이 맞는 다른 28수 천문이 주위에 펼쳐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때 30년 전 지리산 조재련선생과 계룡산 송철화선생의 예언은 결정적인 힘이 되었습니다. 지리산 조재련선생의 예언서에는 삼간절벽, 매석득객, 여운별잔, 옥류삼제... 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이것을 종합해 보면, 중국 남송의 술잔 내면에 그림이 그려 있는 것처럼(별잔/玳玻盞), 옥류가 흐르는 절벽에 三帝(청룡,백호,주작)가 있어 사람이 매번 저녁에 모인다. 라고 의역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계룡산 송철화선생의 예언과 큰 맥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틀림없이 무언가를 보았기에, 30년 전에 지리산과 계룡산에서 각각 동일한 예언을 하였다는 결론을 맺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천문을 발굴하겠다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위 발굴에 무슨 첨단장비가 동원된 것은 아닙니다. 동양학 이치와 바위기감 그리고 개인인연에 의존했습니다. 발굴은 순리롭게 진행되어, 강의 후 시간을 활용하여 약3개월이 걸렸습니다. 위 과정은 감동과 감탄의 연속이었는데, 김용국님은 주작류(柳)바위와 현무녀(女)바위, 민병천님은 현무벽(壁)바위, 이광욱님은 청룡심(心)바위, 김정호님은 청룡각(角)바위, 공경옥님은 주작귀(鬼)바위를 찾는데 결정적인 실마리를 제공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박종환님이 사진촬영을 하셨고, 임종효님, 손영덕님, 권순범님이 힘을 모아 주셨습니다.
위와 같이 천문 지리 인사가 함께 어우러진 정역성지는 세계적인 동양학의 발상지로 거듭날 것입니다. 위 과정에서 각자의 노고를 아끼지 않으신 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2009년 5월 18일
신청인 안초 이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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